어릴적 미술시간 서양 수채화나 유채화에서 보던 과일이 있었다.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일이기에 모과과에 속하는 못먹는 과일이려나 단정 짓고 넘어갔었다. 근데 미국에선 가을 이맘때쯤 되면 슈퍼마켓 과일코너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 하고 있는이 과일을 만나 볼수 있다. 과일 이름을 읽어보니 얘들이 배란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연갈색의 배가 아니였다. 일명 서양배.
이놈의 호기심은 언제쯤 사라지려나. 처음 이 과일을 만나게 된 날 종류별로(종류가 꽤 여러가지다) 단단하고 색깔이 예쁜것을 골라 장바구니에 실어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먹음직 스럽게 예쁘게 생긴 빨간 서양배 하나를 집어 칼로 깍아 한입 크게 배어 물었다. 이럴수가....너무 맛있었냐구? 정말 맛이없었다. 무와 배 사이라고나 할까. 한입 먹고 든 생각은 '역시 과일은 한국과일이야!'였다.
그렇게 종류별로 사다놓은 예쁜 모양의 서양배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걸 어떻게 다 먹나하는 생각뿐이였다. 그렇게 버리지도 먹지도 않고 2~3일 정도를 방치해두었다. 3일정도 지나니, 약간 배가 말캉해 지기 시작하는거다. 사다놓은 배들을 버리기는 아까워 하나를 집어 깍아 한입 베어먹어보니. 후숙으로 배맛이 훨씬 좋아진 케이스. 그자리에서 남은 배들을 모두 헤치웠다. 크리미한 배가 있다면 이런맛일꺼야. 맛있다. 이럴수가. 그 때 이후로 가을만 되면 꼭 서양배를 종류별로 사다놓고 2~3일 숙성을 시켜서 먹곤 한다.
물론 여전히 한국의 아삭아삭한 배가 훨씬 맛있긴 하지만, 가을이 되면 그 부드럽고 육즙(?)이 흐르는 배맛이 그리워 꼭 사먹게 된다. 혹시라도 이때쯤 미국에서 혹은 유럽에서라도 이 서양배 종류를 보신다면, 꼭 후숙시켜서 드셔보시길. 후회하시더라도 먹어본 놈이 때깔도 더 좋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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